강원도 기행

2008. 01. 14.

그동안 좀처럼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블로그에 오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만…거의 한달 정도 다른 블로거들의 답글 창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었네요.

지난해 12월 성탄절 전날, 친구가 근무하고 있는 강원도 양구의 한 군부대엘 다녀왔습니다. 그냥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계획은 없이 떠났지만, 느끼고자 했던 어떤 목적은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편한 곳에 있으면서 나태해지는 것이 좀 짜증도 났고,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한편으론 무언가 간절했던 시절 -특히 오래전에 잊었다고 생각했던 군생활의 기억-도 더듬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군생활에 좋은 추억만 가지고 있는 그런 위인은 못되기 때문에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도 후회는 조금 들더라고요. :)

친구의 방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엔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처럼 생긴 건물들과 내무실들이 꽤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있던 곳과는 달리 길가에서도 부대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더라고요. 친구 말로는 전방부대는 이런 곳이 많다고. 병사들 몇명하고 이야기도 나눠보았고, 내무실도 조금 볼 수 있었습니다. 머리가 좀 긴 말년 병장, 표정에서 긴장이 역력한 신병도 눈에 띄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 저는 문가에 뻣뻣하게 앉아있기도 하고, TV 가까이 편하게 누워있기도 합니다. 긴 시간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나타나는 이 이질적인 장면, 저는 이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곳을 들른 보람을 느꼈습니다.

돌아온지 한달도 되지 않아 벌써 이 강원도 기행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얻어온 제 안의 기억은 잠들기 전에 매일 떠오릅니다. 즐거운 기억들이 많은 것은 저에게 행운일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면 친구와 숙소로 걸어오다가 본 밤하늘에 유일하게 빛나던 달 말이죠.

하지만 이럴게 아니라 낭만 따위는 떠올릴 틈 없는 ‘병사‘를 추억해야 하는데…그러기엔 제 머리는 너무 이기적이네요. 그것은 제가 병사였던 시절, 부대에 놀러온 장교의 친구들을 보며 떠올렸던 미래의 다짐이기도 한데 말이죠. 이렇게 역사는 되풀이되는 걸까요. 그때의 제가 지금의 저를 본다면 어떤 말을 하게 될지 궁금하네요.

- 가즈랑

강원도 기행 & 대화들

  1. 앗 가즈랑님 오랜만의 포스팅에 1등입니다(...)
    그때의 제가 지금의 저를 본다면 어떤 말을 하게 될지 궁금하네요

    살짝 뒤집어서, 지금의 제가 예전의 저를 보고 어떤 말을 하겠는가, 같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쪽은 답이 계속 바뀌는 게 신기하다면 신기하달까요, 이렇게 역사는 계속 재조명되는 것 같습니다 ^^; 2008. 01. 14.
  2. 남편(당시 남친)이 2007~2009년까지 강원도 원통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3년 전쯤, 남편과 그 부대 앞을 지나 미시령을 건너 설악산, 속초에 놀러갔었는데 남편이 그러더군요. \"이 계곡이랑 산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그때는 전혀 몰랐었다\"고. 2008. 01. 14.
  3. 정말 오랜만에 포스팅해주셨네요. : )
    처음에는 아직도 군에 있는 친구가 있나...
    이랬는데, 역시나 장교로 복무중인 친구분이셨군요.
    어제 잠깐 \'생활의 발견\'을 시청했는데...
    그 영화 자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영화의 배경이 춘천이라서..
    그 풍경들을 바라보니 옛추억들이 떠오르더라구요.
    조만간 춘천이나 한번 가봤으면 좋겠네요... 2008. 01. 14.
  4. polarnara님 // 1등 축하드려요. :) 아 그렇게 바꿔서 생각해볼 수도 있겠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답이 변해가는 것도 같고요. 나를 남처럼 여겨본다는 건 긍정적인 자기반성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8. 01. 14.
  5. 펄님 // 2007~9년은 97~99년을 잘못 적으신 거 같네요. :) 그렇게 이해할께요. 저는 강원도에서 보내진 않았지만, 제대하고 근무지를 두번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민간인이 본 그 부근의 풍경은 정말 새로운 면이 많았지요. 거기엔 어느정도 추억이란 이름이 덧칠되었을게 분명하지만요. 2008. 01. 14.
  6. 민노씨 // 장교로 복무하고 있는 친구를 만난 것이긴 한데, 지금도 병사로 복무중인 친구도 있습니다. 한국 법학교육의 폐혜를 몸소 느낀다랄까요. :) 다행히 이제 거의 제대할 때가 된 녀석들입니다만.. 춘천은 한번도 가본적이 없지만 들은 바로는 참 좋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꼭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강원도의 산세에서 다른 지방에서는 느낄 수 없던 이국적인 느낌도 받았거든요. 2008. 01. 14.
  7. 저는 양구와 가까운 인제에서 군생활을 했는데요, 힘든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군복무까지 하고나서 미국에 왔고 영주권까지 가지게 되었지만, 타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면서 정말 감사하는 것이 제가 군대에 다녀왔다는 거랍니다. 요즘 기분은 일병 3호봉 정도 된 것 같아요. :) 2008. 01. 15.
  8. Y군님 // 오 그러셨군요. 강원도에서 군생활 하신 분들이 꽤 많은 거 같네요. 하긴 이번에 가서 보니 길옆에 정말 군부대가 많더라고요. 지난달 가서 느꼈던 강원도의 추위를 떠올리면서 지금 견디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군대에서 얻어온 교훈은 거의 비슷한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8. 01. 15.
  9. #

    duoh5log

    제2국민역이라 부끄럽습니다만 그래도 코멘트 하나 남겨봅니다. 꾸벅 2008. 01. 16.
  10. 전 다시는 그 분대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하하.
    마치 원죄와도 같은 기억들이 가득하기에. 2008. 01. 17.
  11. duoh5log 님 //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요..정말로 ^ ^; 요즘 많이 바쁘신듯하던데, 어떤 의미에서는 좀 부럽기도 하답니다. 일 한가해지시면 재미있는 글 기대할께요~

    히치하이커님 // 저도 절대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아니지만...몇몇 사람들 때문에 다른 인연마저 한통속으로 몰아버리긴 좀 아쉽더라고요. 태어나서 처음 본 정말 이해가 불가능한 사람들, 그리고 문화..무엇보다 나중에는 그들을 닮은 모습이 내 안에도 있다는 걸 발견하고 꽤 괴롭기도 했습니다. 2008. 01. 17.
  12. 제대한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아서인지 가끔 군복무 시절의 꿈을 꾸곤 합니다. 음... 실제로 많은 걸 배웠고 보람도 느끼긴 하지만 그래도 꿈에서 깨면 항상 안도하곤 해요. 억만금을 준대도 두 번 가라고 하면 절대 안 갈 겁니다 ㅎㅎ 2008. 01. 18.
  13. 필유님 // 진짜 억만금을 준다면? 저는 잠깐 생각해보겠습니다.:) 답글 달아주신 분들의 의견을 보면, 군복무는 정말이지 얻는 것이 있더라도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그런 곳으로 여전히 남아있네요. 우리 다음 세대에서는 어떻게 될지.. 2008. 01. 19.
  14. 저는 철원에서 4주 기초훈련을 받았습니다. 4월에 들어가 5월에 나왔는데, 매일 아침 밥 먹으려고 식당 앞에 줄 서 있으면서 바라보던 맞은 편 산이 아직도 기억나요. 처음엔 황량하니 썰렁하고 추운 제 마음과도 같더니만, 퇴소가 가까워지니까 산도 푸르러지면서 따뜻해 지더라고요. 2년여의 군생활에 비할 수 없는 소위 \'체험\' 수준이었지만, 병사들 정말 고생 많이 한다는 건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다짐했던 것들을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지... 많이 부끄러워지네요. 2008. 01. 19.
  15. 자유님 // 최전방 하면 생각나는 철원에서 훈련받으셨군요. 저는 아주 따뜻한 남쪽 진주에서 아주 더울 때 훈련받아서 그런지 모래먼지밖에 떠오르질 않네요. 아 비가 아주 많이 왔던 것도 기억나네요. 초심을 계속 간직하는 게 생각만큼 쉬운일이 아니란걸 요즘 많이 느낍니다. 마지막 문장에 크게 공감할 수밖에요.. 2008. 01. 19.
  16. 강원도는 별로 가본 적이 없는 것 같은디 훌쩍 떠나고 싶구만요~ 2008. 01. 24.
  17. 너바나나님 // 아홉그루님과 함께...말씀이시죠? :) 강원도를 다 다녀본 건 아니지만, 산등성이 곳곳에 호수가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제게 차가 있다면 잠시 쉬고 싶은 생각이 들만큼 좋은 곳이었습니다. 2008. 0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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