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난한 사람

2007. 06. 03.

그는 목사의 아들이었는데, 의레 짐작하는 것처럼 딱딱하거나 고결한 인상이라기보단 듬직한 외모와 호탕한 웃음소리가 매력적인 친구였다. 남들과 다른 점이라곤 쉬는 시간에 성경을 보고, 종교를 주제로 한 이야기에서 평소답지 않게 무척이나 진지해진다는 점이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기독교 재단의 학교여서 일주일에 한시간 종교 과목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했는데, 아마 그친구가 가장 좋아했던 수업시간이었지 않나 싶다.

학교의 목사님은 나이가 많으신 분이셨는데, 굳이 비유하자면 도올의 이미지와 많이 닮았다. 커다란 몸짓하며, 도취되었을 때의 8옥타브를 넘나드는 목소리가 그랬다. 학생들과 거리도 두지 않아서 수업시간에는 엉뚱해보이는 질문일수록 좋아하셨다. 하지만 다른 수업시간에도 그랬던 것처럼 종교 시간에도 뭔가 질문하는 아이들은 좀처럼 없었다. 질문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때 우리는 시키지 않으면 나서지 않는 ‘촌아이들‘이었던 거 같다.

그래서 그 친구가 손을 들어 질문을 했을 때 주목을 받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정말이지 누구도 바꾸지 않는 관행 그 고요함에 돌을 던진 것과 같았으니까. 그래서인지, 이 친구가 물었던 질문은 지금도 내 머리속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등학교 시절의 질문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무슨 뜻인가요?”

이 질문은 마태오 복음5장 3절에 나오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문장에 대한 것이고, 영어로는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 kingdom of heaven belongs to them”1이다. 짧은 순간 질문을 다시 생각해보고, 나름대로 답을 생각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질문은 간단했는데, 답하기에는 삶과 세상에 대한 경험이 너무 얕았고 가벼웠다(지금도 그렇지만). 나와 동갑인 학생이 한 질문치고는 너무 어른스러워서 질투 비슷한 감정도 느꼈고. 그런데 마음이 가난하다는 표현은 굉장히 한국적이어서 혹시 원문을 퍽 의역한게 아닐까 추측도 했었다. 아무튼 그날 목사님은 맘에 드는 명쾌한 답을 주시지 못했고, 이후 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 질문에 답을 못하고 있다.

얼마간의 검색을 해보니 이 질문은 그 친구뿐만 아닌 많은 사람들이 이미 궁금해했던 것으로 나와 있어서,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이 질문이 특별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글들에서는 나름대로 답을 내리고 있었다. 아마 교리를 가르칠 때 꼭 짚고 넘어가는 부분인 거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뭔가를 사고 싶을 때 그것을 참는 것이 이 성서구절이 말하려했던 순간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내 욕망의 크기는 돈과 비례해서 커지니 역으로 생각해서 돈에 대한 욕심을 참으면 마음이 가난해지는 게 맞을 거 같기도 하다. 혹은 ‘무소유‘를 실천했던 법정 스님의 태도가 이 맥락에 닿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한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일까 물음을 확장해본다. 하지만 여전히 대답이 목마르다. 어쩌면 불교에서 삶을 두고 고민하는 화두가 있듯이, 이것은 성서가 내게 던진 화두같은 물음일지도 모르겠다.

[1] NETBible: Matthew 5

+ 그 ‘목사의 아들‘은 지금 게임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다음에 만나면 꼭 이 질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 가즈랑

마음이 가난한 사람 & 대화들

  1. 조심스럽지만, 한글번역은 상당한 의역, 을 넘어서 왜곡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문을 보자니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되는군요. 2007. 06. 3.
  2. 영문을 읽어보니 미묘한 전달의 차이가 분명 있네요. 영문에서는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는 것\'이 이유라고 말하고 있는데 결과처럼 번역되었으니 말이죠.

    그런데 진짜 원문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저런 내용일지 그건 신학자들의 영역이지 않을까 싶네요. 두루뭉실하게 해석하면 뭐...어느 경우에든 가져다 붙일 수 있겠네요. 2007. 06. 4.
  3. 저는 늦은 나이에 성경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한글성경을 보면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다행히 영어성경을 더 자주 쓰는 환경이라 다행이긴 합니다만 그것도 막힐 때가 많아 쉬운 번역본을 읽으려는 중입니다. 성경이라기보다는 거의 이야기책 같기도 합니다만 The Message라는 번역본이 이해하기가 쉽더군요. 2007. 06. 6.
  4. Y군님처럼 늦게 종교에 입문하는 것이 제겐 더 좋아 보입니다. 삶의 경험을 어느 정도 한 다음에 경전이란 것을 보면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천주교의 영향에 있지만, 지금은 역사적 인간으로서의 예수에 관심이 있습니다. 성서도 그런 입장에서 보고 있고요. God이 과연 있는지에 대해서는 평생 궁금해하며 살 듯 해요.

    말씀하신 The Message라는 성서도 온라인(http://www.biblegateway.com)에서 볼 수 있네요. 위에 있는 Matthew 5(마태 5장 3절)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무척 색다른 문장이고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더 잘 살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이야기 고맙습니다.^ ^
    \"You\'re blessed when you\'re at the end of your rope. With less of you there is more of God and his rule.\" 2007. 06. 6.
  5. 자끄 데리다는 \'번역된 용어는 그 언어 틀 속에서 의미를 따로 갖는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의 텍스트가 또 다른 언어로 번역이 되는 순간, 이미 새로운 의미구성을 하게 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성서와 같이 오래된 책들도 아직까지 수 많은 학자 들이 달라붙어 번역의 방식을 달리하여 작업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약 성서에 대한 한국어 번역은 다양한 번역본들이 존재합니다.개역개정과 개역한글판의 본문을 보면,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라고 의미해석이 가능합니다. 2007. 06. 7.
  6. qbio님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천주교 공동번역 신약성서로만으로는 이해의 폭이 좁았습니다.

    qbio님처럼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성서를 보는 사람들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원문이 아닌 (오류가 있을지 모르는)번역된 성서의 글자하나하나까지도 문자적 진실로 해석하는 경향은 바람직하지 않으니까요. 2007. 06. 7.
  7. 아 그렇게 해석이 되는군요! 2007. 06. 8.
  8. polarnara님 덕분에 찾아보기 시작한 거라고도 볼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2007. 0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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