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민노씨의 글을 읽고, 저도 정현종 선생님의 번역본을, 그리고 크리슈나무르티를 좋아하는 독자이기에..짧은 트랙백을 보냅니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이 책을 처음 만난 건 2004년입니다. 이별이란 것을 겪고 나서 한참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였죠. 이 어려운 세상에 답을 내려줄 수 있는 ‘고귀한 책‘이란 것을 찾아 다녔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첫 느낌은 아..딱딱한 번역투 제목이다. “Freedom from the Known“를 그대로 번역한 알쏭달쏭한 제목.
그래도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유명한 사람이라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한번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목차를 보니, ‘···에 대하여‘라는 소제목들이 죽 있더군요.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Prophet)‘를 닮은 소제목들을 보면서, 이 사람이 제발 그런 화두들을 설명해 주길 바랬습니다. 은유(Metaphor)의 향연이라고 할 만한 지브란의 글은 , 해석의 자유는 컸지만 거기에서 답을 찾는 것은 저한테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군더더기 없는 말 때문인지, 정현종 선생님의 매끄러운 번역 덕분인지, 아니면 제가 겪고 있던 고민들이 책과 부딪혀 깊은 소용돌이를 만들었는지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는 가뭄속 한줄기 단비와도 같이 읽혔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종이에 남겨진 글들의 ‘권위‘를 던져버리기 위해 책 곳곳에 자신의 주장조차 절대적인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경고아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여느 권위적인 영적 ‘지도자‘와는 다른 모습은 그의 말을 더욱 신뢰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 소유한다는 것의 의미를 깊게 파고들어, 내 주위를 떠나버린 것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 저는 이 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처음 구입한 책은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선물했고, 두번째로 구입한 책은 비 많이 오던 날 젖어버려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네요. 두번째 책이 없어지는 순간 저는 많이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했던 ‘활자화된, 혹은 교조화된 믿음‘이 없어지는 순간 사람은 불안하고 또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이야기를 저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잊어버리라는, 깨달음의 끝단까지 가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 외침은 그 어떤 경전보다 제 가슴을 울립니다. 생각(또는 아는 것들)을 버리고 그것을 무심히 바라보는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나기 전과 지금의 저는 분명히 달라졌다는 말은 할 수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고 나면 돌아올 때 작은 경험이라도 얻는 것처럼 말이죠.
- 가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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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씨
저는 기대(?)했던 만큼의 행복한 책읽기는 아닌데.. ^^;
다시한번 읽어볼까 싶습니다.
제가 너무 띄엄띄엄 읽은 것 같기도 하고요.
: ) 2007. 0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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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씨.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읽고 있었다. 명성에 비해선, 개인적으론,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던 터에.. 당신은 그에 관해 말하고 그것에 관해 쓰지만, 드... 2007. 0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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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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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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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