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미사
벌써 새해의 감흥은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새해 첫날 가족들과 미사를 드리고 왔다. 내게 미사는 연례행사이면서 이제 더없이 중요한 ‘묵상’의 시간이 되어버렸다. 예전에는 참 많은 성가와 기도를 책을 안보고도 말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거짐 꿀 먹은 벙어리다. 하늘에서 보시기에 나는 아마도 꽤 심술이 많이 난 어린양일지도 모른다.
나이든 신부님은 성가를 조금 바꿔 부르자고 (내 생각엔 별 중요하지 않은) 제안을 하느라 시간을 많이 썼다. 게다가 강론은 따로 준비하지 않고, 미리 나눠준 종이에 인쇄된 주교의 새해인사를 그대로 읽어내려갔다. 옆에서 어머니가 훌륭하신 신부님이라고 그러는데 고개가 쉽게 끄덕여지진 않았다.
타이밍 맞춰 종을 치고, 포도주와 물을 따라주는 복사(altar boy)를 보면서 예전 저 자리에 서있던 내 모습이 겹쳐졌다. 내가 모셨던 신부님은 제례 후 물을 많이 따라주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 신부님은 조금 적은 걸 좋아해 보였다. 몇몇 자잘한 실수를 보면서 저러면 이따가 수녀님한테 혼날텐데 하는 생각도. 일반 신자들보다 훨씬(?) 하늘 가까이 제단 위에서 봉사를 하면서도 나는 아주 자주 제단 위 물은 그냥 물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밀떡은 그냥 밀떡일 뿐이고.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서 하는 일들을 정말 위에선 다 보고 있을까 싶었다. 뭔가를 해야 할 때 말고는 가만히 서있는 경우가 많아서 딴생각 참 많이도 했다. 신부님 곁에 선 복사가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찼는데 일반 신자들은 얼마나 궁금하고 의문스러웠을까.
이제는 일반 신자석에 앉아 동네 성당에 오신 많은 나이든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며 하늘나라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복사였던 10여 년도 훨씬 지난 그 해, 새해 미사를 드리던 나이든 어른들은 어떤 기도를 올렸을까. 그 안엔 분명 내년에도 새해 미사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망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그때 그 소망을 간절히 원했던 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지금 이 자리에 안 계실 거다. 올해에도 기도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그들의 소망이 참 간절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옆에서 이제는 나보다 더 독실하신 아버지의 성가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예전엔 성당에 전혀 나온 적이 없던 분이시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본적 없는데, 이렇게 변하게 만든 건 무얼까. 천장도 높은 이곳, 성가대의 그레고리안 성가, 위엄있는 제단과 신부님 그리고 모든것이 담긴 성서와 십자가.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오래 사세요. 내내 이런 말만 되뇌이다 소중한 새해 첫 미사를 보냈다. 밀떡을 나눠줄 때 잠깐 오셨던 젊은 보좌신부님이 지금은 입구에서 신자들의 손을 잡고 축복을 해주고 있었다. 작은 키에 넉넉한 인상이 좋아보이던 그 젊은 신부님의 손을 꼭 잡고 싶었다. 내겐 다이어리에 적을 만한 소망조차도 참 적지만, 그냥 올해엔 벌써 큰 소망하나를 이룬 느낌이 들었다.
- 가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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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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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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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씨
참 부럽기도 하고, 묘한 감정을 갖게 하는 글입니다...
\"내겐 다이어리에 적을 만한 소망조차도 참 적지만, 그냥 올해엔 벌써 큰 소망 하나를 이룬 느낌이 들었다.\"
정말 그런 느낌을 만들만한 공간과 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2009. 0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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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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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군
저는 올해는 이런저런 이유로 신년예배를 가지 않았더랬습니다. 그냥 집에서 샴페인 한잔 손에 들고서 인터넷으로 타임스퀘어에서 New Year\'s Eve Ball이 켜지는 것을 봤습니다. 마음을 정리하고 하늘에 계신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건너뛰어서 그런지 올해는 아직도 정리하지 못하고 지난해로부터 이어지는 것들이 유난히 많군요.
아무튼 오늘은 가즈랑님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어서 반갑네요.
좀 늦긴 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9. 0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