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 계약의 요건? (민노씨의 의견에 덧붙임)

2008. 03. 28.

이 글은 ‘커뮤니케이션의 딜레마와 관객들의 변덕 : 올블 사태에 부쳐‘(민노씨)에 보내기 위해 썼습니다. 원래는 답글로 하려다가 조금 길어져서요. 일반화하기 어려운 다양한 관련 판례에 대해 살펴보고, 채용확정 통보만으로 근로계약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고민에서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민노씨의 글은 취업지원자(희주님)와 올블로그 사이에 있었던 일련의 일들에 대한 종합 정리글입니다. 뒤늦게 이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

# 인용된 판례와 희주님 사례와의 차이점(면접취소 vs 최종합격 취소)
인용해주신 판례 잘 봤습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법률정보검색에도 안나오는 걸보니 정말 따끈따끈한 정보네요. ^^; (하지만 구글에 사건번호를 입력하면 원문을 PDF로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근로계약 요건(또는 시점)‘이라는 게 중요한 문제가 되는 거 같습니다. 판사가 위법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근로계약이 되어야 ‘해고‘가 성립이 되고, 그 해고가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면 ‘위법‘일테니까요. (참고로 정당한 이유(예.IMF) 있는 해고는 위법이 아니라고 대법원은 판시한바 있습니다. 대법원 2000다5147)

민노씨의 인용문만으로는 세밀한 정황판단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원 판결문을 좀더(^^) 인용해보겠습니다. 판결문에는

이유 1. 인정사실 2.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및 손해배상의 범위 ···위 면접합격을 취소하고 재면접을 봐야 한다고 통보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은 바, 위 면접합격 취소 통보는 최초의 면접합격 통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4일 후에 이루어졌고, 당시는 피고가 원고와 사이에 최종합격을 전제로 한 근로계약의 체결에 이르기 전의 시점 이므로···
(출처 : 수원지법 2007가단49744)

라고 되어 있습니다.
좀 이상합니다. 분명 최종합격의 취소가 아니라 ‘면접‘의 취소와 그에 따르는 재면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면접만을 불합격 처리하고 다시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분명 최종불합격보다는 절망적이지 않고, 이유가 정당하다면 채용 지원자로서도 납득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또 재면접에 지원할 수 있는 것이고요. 이런 이유로, 제 생각에 본 사례의 ‘면접의 취소에 이은 재면접 통보‘는, 희주님께서 들은 ‘최종 채용 결정‘의 취소 통보에 비해 그 진지함의 무게 면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종합격의 취소가 아니고 면접의 취소라는 부분을 고려해서 판사는 ‘근로계약‘이 성립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참고로 이때 원고(취업지원자)는 다른 회사(대한건축사협회)에는 최종합격한 것으로 나와 있더군요.

# 최종합격 통보=근로계약?

그렇다면 희주님처럼 최종합격통보를 번복한 사례라면 어떨까요. 그리고 이때 최종합격통보를 ‘근로계약‘으로 보았을까요? 근로계약의 시점(또는 요건)과 관련해 좀더 찾아본 판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시기적으로 좀 오래된 것이지만 근로계약 요건이라는 쟁점을 판단하는 데 어느 정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요.

가. 채용내정의 법적 성격 (1) 당사자들의 주장 (2) 판 단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피고 회사가 1997. 11.말경 원고들에 대하여 최종합격 통지를 하고 같은 해 12.경 서약서 등 입사관계 서류 제출을 요구하여 교부 받음으로써 원고들과 피고 회사 사이에는 원고들이 1998. 2.까지 대학을 졸업하지 못할 것 등을 해약사유로 유보하고, 취업할 시기(시기)를 1998. 3. 1.로 하는 내용의 근로계약이 성립되었다고 할 것이고···(출처 : 서울지법 남부지원 98가합20043) 이 판례로 본다면 근로계약(의 요건)을 결정하는 요인은 다음 두가지입니다. 1. 최종합격의 통지 2. 관계 서류의 제출 요구와 교부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상황에서는 근로계약이 성립되는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적어도 법적으로는 말이죠. 그런데 이 사건이 있은지 1년 쯤 뒤에 비슷한 판례가 나왔는데, 여기서는 근로계약을 위 조건 가운데 ‘최종합격의 통지‘만으로도 근로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좀더 사회적 약자의 편에 가까워진다고 해석해도 되려나요. 그 판례 가운데 우리가 찾는 쟁점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가 1997. 11월경 원고들에게 최종합격통보를 해 줌으로써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근로계약관계가 유효하게 성립되어 늦어도 1998. 4. 6 이후에는 원고들이 피고회사의 근로자가 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그 후 피고가 원고들에게 한 신규채용의 취소통보는 실질적으로 해고에 해당한다.···(출처 : 대법원 2000다5147)

# 남는 문제들(해고의 문제)

하지만 여전히 최종합격 통보로 근로계약이 성립되었다고 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위 판례들 모두 근로계약의 성립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업무시작(=입사예정일)‘일 이후의 합격 취소만을 해고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죠.(특히 마지막 판례의 굵은 부분) 즉 일을 시작하기로 한 시점이 지난 뒤에라야 본격적으로 위법성의 문제가 중요해진다는 의미입니다.

위 글 가장 먼저 예시로 들었던 판례(2007가단49744)에서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따라서 희주님의 경우엔 올블로그로부터 통보받은 출근일(4월 1일) 이전에는 비록 근로관계는 성립하지만 채용취소통보가 ‘해고‘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4월 1일이 지나서 이런 상황이 발생했고 그 이후 소를 제기했다면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위 판례속 사례들과는 달리 블로고스피어에서의 파장은 워낙 빠르게 퍼져서 이런 상황이 생긴 듯합니다. 4월 1일이 되기 전, 불과 이틀사이에 모든 상황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꺼져가고 있으니까요.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주님에 대한 여러 정신적·물질적 피해보상은 민노씨의 의견처럼 (첫 판례의 결정에 따라) 인정될 수 있고, 또 이런 약자에 대한 보호가 법이 담고 있는 입법 취지라고 생각합니다.

# 소결

따라서, 희주님의 경우 판례들의 쟁점만으로 판단해볼 때 근로계약이 성립한 것으로는 일단 인정되겠지만, 출근예정일인 4월 1일이전에는 채

용취소가 ‘해고’(그것이 부당하든 정당하든)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한번 짚어본다면요.

덧. 1) 하지만!! 여기 적은 것들을 답이라고 생각하시면 안되겠습니다.(그냥 참고만;;;) 법에 전문적이지 않은 사람의 한 의견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관련 판례들과 전망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글쓰기일 뿐, 저는 희주님이 이 글의 주인공이 되는 상황은 상상하기 싫습니다. :(

덧. 2) 위 판례들 순서대로 기사화된 자료를 링크합니다. 딱딱한 판례보다는 좀 쉽게 읽힐 수 있겠네요. 판례1, 판례3 (판례2에 해당하는 기사는 없는 듯합니다)

- 가즈랑

근로 계약의 요건? (민노씨의 의견에 덧붙임) & 대화들

  1. 굉장히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 )

    저 역시 그 부분을 쓰면서 한편으로 꽤 찜찜했는데, 이렇게 보충해주시니 정말 고맙네요. 저로선 비교적 최신 판례로 추정되는 판결이 있길래, 비록 일심판결 이긴 하지만 인용했던 것인데, 제 글에 절대적인 판단표준이 될 수는 없다고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좀더 찾아보고, 좀더 고민한 뒤에 쓸 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생기네요.

    읽은 건 토요일 새벽인데, 이제야 답글을 남깁니다. ㅎㅎ
    어제 오늘 거의 족히 20시간은 잠을 잤습니다.
    한 것도 없이 피곤이 누적되었는지, 아니면 금요일에 마신 술이 잘못된 것인지... 자도 자도 피곤하더라구요.
    이제야 좀 정신을 차렸네요.

    가즈랑님의 이 글은, 좀 늦긴 했지만, 제 본문에 링크인용하고, 제 경솔한 판단에 대해선 추고해야겠습니다.

    추.
    그런데 하늘님의 최종(?) 입장을 보면, 과연 이 \'합격통보\'의 성질이 정말 대법원에서 말하는 \'최종 합격 통보\'로 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제가 인용한 판례에서의 \'면접 합격\'으로 보아야 할지...가 그 해석상 문제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긴 해요. ㅎ

    암튼 다시한번 부족하고, 경솔하며, 또 잘못된 일방적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교정해주셔서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 ) 2008. 03. 30.
  2. 민노씨 // 고맙습니다. 원래 글이 있지 않았다면 이 글도 없었겠죠. 그런 면에서 볼때 이 글의 존재 의미는 민노씨 글에 기대고 있다고 하겠네요. 제 글이 항상 이렇습니다. :)

    노동법에 대한 사전 공부없이 이런 글을 쓴 것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도 좀 들지만, 다른 누군가가 이로 인해 좀더 엄밀한 글을 써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미루기만 하자는 건 아니고(^ ^) 나중의 제가 될 수도 있겠지요. 음...그랬으면 좋겠습니다. 2008. 04. 1.
  3. 오랫만에 들어왔는데 바쁘신가봐요?

    갑자기 \'근로기준법\'만이라도 지켜달라고 외치며 죽어간 전태일열사가 생각나는군요. 2008. 04. 8.
  4. 이정일 // 바쁘긴요. 시간에 비해 마음의 여유가 없서 밖에도 잘 나가질 않습니다. 게으름이 도지는 거 같기도 하고요. :) 근로기준법은 결코 멈춘 법이 아닌데도, 현실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으니 참 답답합니다. 2008. 04. 8.
  5. 스킨 바꾸셨군요. : )
    여전히 멋지네요! 2008. 04. 11.
  6. 민노씨 // 감사합니다~ 그간 들인 시간과 노력이 보상받는 느낌이네요. :) 2008. 0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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